“그의 이름은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해상 지휘관들 중에서도 능히 맨 앞줄을 차지할 만한 이순신 제독을 낳게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이순신 제독은 광범위하고 정확한 전략판단과 해군전술가로서의 특출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탁월한 지휘통솔력과 전쟁의 기본정신인 그칠 줄 모르는 공격정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에 있어 그는 언제나 승리를 끝까지 추구하였으며, 그 반면에 그 용감한 공격이 결코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는 점은, 넬슨 제독이 기회가 있는 대로 적을 공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다가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순신 제독이 넬슨 제독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George Alexander Ballard, New York, E. P. Dutton, 1921.

예부터 장군으로서 기정분합의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全으로써 그 分을 쳤다.”고 하는 것도 이 뜻에 틀림없다. 그런데 해군장군으로서 이를 살피면 먼저 동양에 있어서는 한국의 장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장수 넬슨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이순신은 실로 개세(蓋世)의 해장(海將)이다. 불행히도 생을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용명(勇名)도 지명(智名)도 서양에 전하지 않고 있지만, 불완전하긴 해도 임진왜란에 관한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장군이다. 서양에 있어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다면 네델란드의 장수 르 롸이테르(Michiel de Ruyter : 1607∼1678) 이상이라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 도저히 인격을 견줄 수 없다. 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창조한 사람이며, 300년 이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전술로써 싸운 전쟁지휘관이었다.
帝國國防史論, 수문사, 1908. 해군중장 사토 데스타로오.

“과연 우리는 이순신의 영령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고 빌었다.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 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일-러 전쟁시 제41호 어뢰정 정부(艇付) 가와다 이사오.

“나를 넬슨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1905년 5월 27일 대마도 해전에서 로제스트벤스키제독이 이끄는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격파한 뒤 그에게 전승(戰勝)을 축하하는 축사를 듣고나서 도고 헤이하치로가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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