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장군의 어린시절과 조부의 기묘사화 관련 여부에 관한 답변
작성자   운영자 게시일   2009-07-22
, , , , 지방좀 내려갔다 오니 비중 있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네요

 저희 집안에서는 충무공의 할아버지(휘 百祿)를 楓巖公(풍암공)이라 세호를 씁니다.
楓巖公은 1522년(중종 17) 아들 덕연부원군(휘 貞)이 11살 때 생원  2등에 입격합니다.
그리곤 천거로 선교랑, 참봉, 봉사직를 받았지만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서 손자인 충무공의 관직에 따라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증직 받으셨지요.

1519년 흠모하던 정암 조광조가 훈구세력이 일으킨 기묘사화에 화순에서 사약을 받아 죽고, 주위사람들도 같은 당여로 몰려 참형을 당하자 서울에 살던 공은 곧바로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용인 심곡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너머 고기리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은거하시다 생을 마쳤습니다. 묘소도 용인 고기리에 있는데 생몰년을 모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아들 덕연부원군도 벼슬을 단념한 채 43세 쯤 외갓집이자 처갓집 근처인 충남 아산 음봉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후 충무공이 상주방씨께 장가들어 외갓집 근처이며 처갓집인 현충사자리 백암리에서 정착한 것으로 집안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충무공이 11~12살 쯤입니다. 즉 충무공이 서울 건천동에서 서애 류성룡을 처음 만난 건 10살 때로 봅니다. 왜냐하면 서애가 안동에서 아버지(류중영)를 따라 한양 동학에 입학한 것이 13살이고 3살 차이니 그렇게 본 것이죠. 어린시절 얘기는 충무공의 조카인 묵헌공(휘 분)이 쓴 행록에 나와 있어 주언부언 않겠습니다.

드라마에서 역적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또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588년(戊子年, 선조 22)에 모친 상주방씨부인이 4형제에게 준 분재기에도 보면 느껴집니다. 지금도 그때의 지명인 송곡논 등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현충사 경내 고택 등 경매건도 楓巖公(풍암공)이 사서 손자 충무공에 준거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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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답변 감사합니다.
`이순신과 통제영'특별기획전 마련..영정.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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