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제 4차 부산포 승첩을 아뢰는 계본]
일 자   만력 20년(1592) 9월 17일
삼가 적선을 무찌른 일을 아룁니다.

경상도 연해안의 적을 세 번 왕래하여 무찌른 뒤로 가덕에서 서쪽으로는 적의 그림자가 아주 끊어졋습니다.

그러나, 각도에 가득찼던 적들이 날마다 내려온다 하므로 그들이 도망해 갈 시기를 이용하여 수륙으로 한꺼번에 공격하려고 본도(전라도) 좌우도의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을 모두 철저하게 정비하여 지난 8월 1일 본영 앞바다에 이르러 진을 치고 거듭 약속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달 8일 선전관 안흥국이 가져온 분부의 서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경상우도 순찰사 김수의 공문 내용에, 『위로 침범한 적도들이 낮에는 숨고 밤에 행군하여 양산 및 김해강 등지로 잇달아 내려오는데, 짐짝을 가득 실은 것으로 보아 도망치려는 낌새가 현저하다.

』 하였으므로 8월 24일 우수사 이억기 등과 배를 띄워 수군 조방장 정걸도 함께 거느리고 남해땅 관음포에 이르러 밤을 지냈습니다.

25일에는 미리 약속한 사량 바다 가운데 이르러 경상도 우수사 원균을 만나서 적정을 상세히 물은 뒤에 다 함께 당포에 이르러 밤을 지냈습니다.

26일은 비바람이 섞어 쳐 쉽게 배를 띄우지 못하다가 날이 저물녘에 거제도의 잘우치에 이르러 밤을 이용하여 몰래 견내량을 건넜습니다.

27일은 웅천땅 제포 뒷바다의 원포에서 밤을 지냈습니다.

28일에는 경상도 육지에 적을 정찰하러 보낸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고성ㆍ진해ㆍ창원 병영 등지에 머물고 있던 왜적들이 이달 24ㆍ25일 밤중에 모두 도망했다.

』 하였는데 필시 산에서 망보던 적들이 우리 함대를 바라보고 위엄에 놀라 배를 정박해둔 곳으로 급히 도망했을 것입니다.

이날 이른 아침에 배를 띄워 바로 양산과 김해의 두 강 앞 바다로 향하는데, 창원땅 구곡포의 보자기이며 정 말석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포로된지 3일째 되는 그날(28일) 김해강에서 도망쳐 돌아와서 말하기를, 『김해강에 머물고 있던 적선이 몇일 동안에 많은 수가 떼를 지어 몰운대 바깥바다로 노를 재촉하여 나가는 바, 도망가려는 모습이 분명하여 소인은 밤을 타서 도망쳐 돌아 왔습니다.

』하므로 가덕도 북변의 서쪽 기슭에 배를 감추어 숨어 있게 하고, 방답첨사 이순신과 광양 현감 어영담으로 하여금 가덕 외면에 숨어서 <양산의 적선을 탐망해서 오라>고 보내었는데, 신시쯤 돌아와서,『종일 살펴보았으나, 왜의 소선 4척이 두 강 앞 바다로부터 나와서 바로 몰운대로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 고 말하기 때문에 그대로 천성 선창으로 가서 밤을 지냈습니다.

29일에는 닭이 울자 배를 띄워 날이 밝을 무렵에 두 강 앞 바다에 도착하였는데, 동래땅 장림포 바다 가운데 낙오된 왜적 30여명이 대선 4척과 소선2척에 나누어 타고 양산으로부터 나오다가 우리 함대를 바라보고서는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는 것을 경상우수사가 거느린 수군들이 도맡아 깨뜨려서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좌별도장인 신의 우후 이몽구도 대선 1척을 깨뜨리고 머리 1급을 벤뒤에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 두강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그 강 어귀의 형세가 매우 좁아서 판옥대선은 쉽게 싸울 수 없겠으므로 어두워질 무렵에 가덕 북변으로 되돌아 와서 밤을 지내면서 원균 및 이억기 등과 함께 밤새껏 방책을 강구하였습니다.

9월1일 닭이 울자 배를 띄워서 진시에 몰운대를 지날 무렵에는 동풍이 갑자기 일고 파도가 거세어 간신히 배를 저어 화준구미에 이르러 왜대선 5척을, 다대포 앞 바다에 이르러 왜대선 8척, 서평포 앞바다에 이르러 왜대선 9척, 절영도에 이르러서는 왜대선 2척을 각각 만났는데, 모두 기슭을 의지하여 줄지어 머물고 있었으므로 3도의 수사가 거느린 여러 장수와 조방장 정걸 등이 힘을 합쳐 남김없이 깨뜨리고, 배안에 만재한 왜의 물건과 전쟁기구도 끌어내지 못하게 하여 모두 불살랐으나, 왜인들은 우리의 위세를 바라보며 산으로 올랐기 때문에 머리를 베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위의 절영도 안팎쪽을 모조리 수색하였으나, 적의 종적이 없었으므로 작은 배를 부산 앞 바다로 급히 보내어 적선을 자세히 탐망하게 하였더니, 『대개 500여척이 선창의 동쪽 산기슭의 언덕 아래 늘어 서 있으며 선봉 왜대선 4척이 초량 목으로 마주 나오고 있다.

』 하므로 곧 원균 및 이억기 등과 의논하기를, 『우리 군사의 위세로써 만일 지금 공격하지 않고 군사를 돌이킨다면 반드시 적이 우리를 멸시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 고 말하고, 독전기를 휘두르며 진격하였습니다.

우부장 녹도 만호 정 운ㆍ구선 돌격장 싱의 군관 이언량ㆍ전부장 방답첨사 이순신ㆍ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ㆍ좌부장 낙안군수 신호 등이 먼저 곧바로 돌진하여 위의 선봉 왜대선 4척을 우선 깨뜨려서 불살라 버리자, 적도들이 헤엄쳐 육지로 오르므로 뒤에 있던 여러 배들은 곧 이때를 이용하여 승리한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서 「장사진(長蛇陣)」으로 돌진하였습니다.

그때, 부산성 동쪽 한 산에서 5리쯤 되는 언덕밑 3개소에 진을 치고 있는 대ㆍ중ㆍ소선을 아울러서 대개 470여척이었는데, 우리의 위세를 바라보고 두려워서 감히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전선이 곧장 그 앞으로 돌진하자, 배안과 성안ㆍ산위ㆍ굴소에 있던 적들이 총통과 활을 잦고 거의 다 산으로 올라 6개처로 나누어서 내려다 보면서 철환과 화살을 빗발과 우박같이 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편전을 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인 것 같았으며, 혹 대철환을 쏘기도 하는데, 주발덩이 만한 것이 우리배에 많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여러 장수들은 한층 더 분개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다투어 돌진하면서 천ㆍ지자 총통에다 장군전ㆍ피령전ㆍ장편전ㆍ철환 등을 일제히 발사하며 하루 종일 교전함에 적의 기세는 크게 꺾였습니다.

그래서, 적선100여척을 3도로 여러 장수들이 힘을 모아 깨뜨렸습니다.

화살을 맞아 죽은 왜적으로서 토굴속에 끌고 들어간 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나, 배를 깨뜨리는 것이 급하여 머리를 벨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전선에서 용사들을 선발하여 육지로 내려서 모조리 섬멸하려고 하였으나, 무릇 성 안팎의 6ㆍ7개소에 진치고 있는 왜적들이 있을 뿐 아니라 말을 타고 용맹을 보이는 놈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말도 없는 외로운 군사를 경솔하게 육지로 내리게 한다는 것은 만전의 계책이 아니며, 날도 저물었는데 적의 소굴에 머물러 있다가는 앞뒤로 적을 맞는 환란이 염려되어 하는 수 없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배를 돌려 한밤중에 가덕도로 돌아와서 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양산과 김해에 머물고 있는 왜선은 혹은 말하기를<점차 본토로 돌아간다>고 합니다만, 몇 달 이래로 그 세력이 날로 외로워짐을 스스로 알고 모두 부산으로 모이는 일이 없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부산성 내의 관사는 모두 철거하고 흙을 쌓아서 집을 만들어 이미 소굴을 만든 것이 100여호 이상이나 되며, 성 밖의 동서쪽 산기슭에 여염집이 즐비하게 연달아 있는 것도 거의 300여호 이며 이것이 모두 왜인들이 스스로 지은 집입니다.

그중의 큰집은 층계와 희게 단장한 벽이 마치 불당(절간)과 비슷한 바, 그 소행을 따져보면 극히 통분한 일입니다.

접전한 다음날(9월 2일)또다시 돌진하여 그 소굴을 불사르고 그 배들을 모조리 깨뜨리고자 하였는데 위로 올라간 적들이 여러 곳에 널리 가득차 있으므로 그들의 돌아갈 길을 끊는다면 곤난에 빠진 도적들의 환란이 있을 것이 염려되는 바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진격하여야만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풍랑이 거세어 전선이 서로 부딪쳐서 파손된 곳이 많이 있었으므로 전선을 수리하면서 군량을 넉넉히 준비하고 또 육전에서 크게 물러나오는 날을 기다려 경상 감사 등과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진격하여 남김없이 섬멸하여야 하기 때문에 2일 진을 파하고 를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우후 이몽구가 베인 왜의 머리 1급을 본래 왼쪽귀가 없는 것이므로 그 귀뿌리를 잘라내어 소금에 저려서 올려 보냅니다.

그리고 정해년에 포로되었다가 도망해 돌아온 본영의 수군 김개동과 이언세등을 문초한 내용에, 『저희들을 잡아간 왜인은 본래 왼쪽 귀가 없었는데, 이제 왜인의 머리를 보니 눈썹과 눈이 흡사할 뿐 아니라 이 왜인이 비록 나이는 많지만 스스로 두목이 되어서 도적질을 일삼고 살인을 즐겨하였다.

』 고 말하였으며, 사량 권관 이여염이 사로잡은 왜인 오도동을 문초한 내용은, 『일본의 왜인 상관들은 온가족과 부인을 데려 온 이래로 소인이 살고 있는 지방의 왜인들은 모두가 싸움터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여 산골로 피해 들어갔는데, 6ㆍ7월 사이에 일본의 사신이 산을 수색하고 찾아내어 배안에 가득히 실어서 그대로 이곳으로 보낸것입니다.

근일에 고려 사람이 우리들을 많이 죽여 형세가 오래 머므르기 어려워서 본토로 돌아가려고 하던 차에 이렇게 잡히었습니다.

』 하는바, 교묘하고 간사스런 말을 비록 믿을 수는 없으나, 그의 나이가 어리며 생김새도 약간 어리석은 것으로 보아 어느정도 그럴듯한 점도 있습니다.

무릇 전후 4차출전하고 열 번 접전하여 모두 다 승리하였다 하여도 장수와 군졸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 싸움보다 더할 것이 없습니다.

전일 싸울 때에는 적선의 수가 많아도 70여척을 넘지 않았는데, 이번은 큰 적의 소굴에 늘어서 470여척 속으로 군사의 위세를 갖추어 승리한 기세로 돌진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루종일 분한 마음으로 공격하여 적선 100여척을 깨뜨렸습니다.

적들로 하여금 마음이 꺾여 가슴이 무너지고 머리를 움추리며 두려워서 떨게 하였는바, 비록 머리를 벤 것은 없으나 힘써 싸운 공로는 먼저번 보다 훨씬 더 하므로 전례를 참작하여 공로의 등급을 결정하고 별지에 기록하였습니다.

순천 감목관 조정은 <의분을 참지못해 스스로 배를 준비하여 단지 종과 목동만을 거느리고 자원 출전하여 왜적을 많이 사살하고 왜적의 물건도 많이 노획했다>고 중위장 권준이 재삼 보고해 왔는데, 신의 보는 바도 그러하였습니다.

녹도 만호 정운은 사변이 일어난 이래 충의심이 북받쳐 적과 함께 죽기로 맹세하였는데, 세 번에 걸친 출전에서 언제나 먼저 돌진하였습니다.

이번 부산싸움때 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다가 적의 대철환이 이마를 뚫어서 전사한 바, 몹시 비통하여 여러 장수 중에서 별도로 차사원(差使員)을 정하여 각별히 호상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아울러 그 후임에는 달리 무예와 지략이 있는 사람을 즉시 임명하여 내려 보내시기를 바라며, 우선 신의 군관 전 만호 윤사공을 가장으로 정하여 보내었습니다.

접전할 때, 철환을 맞아 전사하고 중상한 군졸로서는 방담1호선의 사부인 순천 수군 김천회ㆍ여도선의 분군 인 흥양수군 박 석산ㆍ사도 3호선의 격군인 능성 수군 김 개문ㆍ본영한후선의 격군이며 토병인 종 수배ㆍ사공이며 보자기인 김숙연 등은 철환을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신이 타고 있는 배의 격군이며 토병인 절종 장 개세ㆍ수군이며 보자기인 김 억부ㆍ김갯동ㆍ본영한후선의 수군 이종ㆍ격군이며 토병인 김 강두ㆍ박성세ㆍ본영 거북선의 토병 정인이ㆍ박언필ㆍ여도선의 토병 정세인ㆍ사부 김희전ㆍ사도 1호선의 군관 김봉만ㆍ사공이며 토병인 수군 안원세ㆍ격군이며 토병인 수군 최한종ㆍ광주 수군 배 식종ㆍ흥양1호선의 격군인 보자기 북개ㆍ본영 우후선의 사부인 진무 구은천ㆍ방답1호선의 격괄군인 종춘호ㆍ종보탄ㆍ그진의 거북선 격괄군인 종춘세ㆍ종연석ㆍ보성 수군 이가복ㆍ보성선의 무상 흔손 등은 철환을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신이 타고 있는 배의 토병인 수군 김 영견ㆍ보자기 금동ㆍ방답거북선의 순천 사부인 신선 박세봉 등이 화살을 맞아 조금 상한 것 외에는 달리 상한 사람이 없습니다.

위에 적은 여러 사람들은 부산 싸움에서 날아오는 시석을 무릅쓰고 결사적으로 돌진하다가 혹은 전사하고 혹은 부상을 하였으므로 시체를 배에 싣고 돌아가 장사지내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들의 처자들은 휼전에 따라 구회케 하였으며, 중상에 이르지 않는 사람들은 <약물을 지급하여 충분히 구호하도록 하라>고 각별히 엄하게 신칙하였습니다.

왜의 물품중에 쌀ㆍ포목ㆍ의복 등은 군사들에게 상품으로 나누어 주고 왜적의 병기 등의 물품은 아울러서 아래에 기록하였습니다.

태인현에 사는 업무 교생 송여종은 낙안 군수 신호의 대변 군관으로서 네 번이나 적을 무찌를 때, 언제나 충성심이 치솟아 남들보다 앞서서 자진하여 돌진하고 죽을힘을 다 하여 힘껏 싸워 거듭 왜의 머리를 베었을 뿐 아니라 전후의 전공이 모두 1등에 참록한 자이므로 이 장계를 가지고 가서 올리도록 주어 보냅니다.

삼가 갖추어 아뢰옵니다.


 
[정운을 이대원 사당에 배향해 주기를 청하는 ..
[종이를 올려 보내는 일을 아뢰는 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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