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제 3차 한산도 승첩을 아뢰는 계본]
일 자   만력 20년(1592) 7월 15일
삼가 왜적을 잡아 죽인 일을 아룁니다.

지난 6월 3일 수원에서 발송외어 그달 10일 접수한 도순찰사 이광의 공문 내용에,『5월 22일 작성된 좌부승지의 서방 내에 <적선을 깨뜨리는 것이 병가가 승리하는 선책인 바, 다만 적선이 얼마나 머무르고 있는지를 알지못하여 다시금 전라좌수사이게 명령하여 ‘경상우수사와 함께 상의하고 협력하여 남김없이 격파하되, 다만 5,6척을 남겨두어 궁한 도적들의 돌아갈 길이 되게 하고, 두 수사의 근처에도 내가 머무르고 있음을 숨겨서 형세를 보아 추격할 일이다.

’하고 전라우수사에게는 「병선을 정비하여 계속 지원하라.」는 일로 급급히 명령하였다.>는 분부이신 내용이었으므로 서장내의 사연을 상고하여 경상우수사 및 본도우수사와 함께 약속하고 전례에 의하여 시행함이 좋을 것이다.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서장을 받기 전에 경상도의 바다길에 있는 적들이 경상우도의 연해안 지방이 차츰차츰 침범하여 집들을 불태우고 재산을 빼앗는 짓이 벌써 사천.곤양.남해 등지까지 침범하였으므로 본도 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 등에게 공문을 보내어 약속하고, 지난 5월 29일 배를띄워 사천 선창. 고성의 당포 선창. 당항포. 거제도의 율포 앞 바다 등 여러 곳에 머무를 수 있는 왜선을 혹은 온전히 잡아죽이고 혹은 좌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힘을 합쳐서 무찌른 뒤에 6월 10일 본영으로 돌아온 상황은 이미 장계한 바입니다.

그런데 위의 분부가 적힌 서장에 의거하여 순찰사의 공문이 또 도착하였을 뿐아니라, 떼를 지어 출몰하는 적을 맞이하여 모조리 무찌르고자, 서로 공문을 돌려 약속하며 배들을 정비하고, 경상도의 정세를 탐문 하였는데,<가덕, 거제 등지에 왜선이 혹 10여척 혹은 30여척이 떼를 지어 출몰한다>할 뿐 아니라, 본도 금산 지경에도 적세가 크게 뻗치었는 바, 수륙으로 나누어 침범한 적들이 곳곳에서 불길같이 일어나건만, 한번도 적을 맞아 싸운적이 없어서 깊이 침범하게 되었으므로 처음에 본도 우수사와 모이기로 약속한 이달 7월 4일 저녁 때, 약속한 곳에 도착하였으며, 5일 서로 약속하고, 6일 함대를 거느리고 일시에 배를 띄워 곤양과 남해의 경계인 노량에 도착하니, 경상우수사가 파손된 것을 수리한 전선 7척을 거느리고 그 곳을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바다 가운데에서 같이 만나 재삼 약속하고 진주땅 창신도에 이르자, 날이 저물고 밤을 지냈습니다.

7일에는 동풍이 크게 불어서 항해하기 어려웠는데, 고성땅 당포에 이르자 날이 저물기로 남하고 물 긷는 일을 하고 있을 때, 피난하여 산으로 올랐던 그 섬의 목동 김 천손이 신 등의 함대를 바라보고 급히 달려와서 고하는 내용에,『적의 대.중.소선을 합하여 70여척이 오늘 하오 2시쯤, 영등포 앞 바다로부터 거제와 고성의 경계인 견내량에 이르러 머무르고 있습니다.

』 하였으므로 다시금 여러장수에게 지시하고, 8일 이른 아침에 적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배를 띄웠습니다.

한 바다에 이르러 바라보니, 왜대선 1척과 중선 1척이 선봉으로 나와서 우리 함대를 몰래 보고서는 도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뒤쫒아 들어가니 대선 36척.중선 24척. 소선 13척(모두73척)이 대열을 벌려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 견내량의 지형이 매우 좁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 전선은 서로 부딪치게 될 것 같아 싸움하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적은 만약 형세가 불리하게되면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갈 것이므로 한산도 바다 한가운데로 끌어내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거제와 고성사이에 있는 한산도는 사방에 헤엄쳐 나갈 길이 없고, 적이 비록 육지로 오르더라도 틀림없이 굶어 죽게 될 것이므로 먼저 판옥선 5,6척을 시켜서 선봉으로 나온 적선을 뒤쫒아서 엄격할 기세를 보이게 한 즉, 여러 배의 적들이 일시에 돛을 달고 쫓아 나왔습니다.

우리 배는 거짓으로 물러나면서 돌아 나오자, 왜적들도 줄곧 뒤쫒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바다 가운데로 나와서는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학익진」을 벌려서 일시에 진격하면 각각 지자. 현자. 승자 등의 각종 총통을 쏘아서 먼저 2,3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여러 장수나 군사와 관리들이 승리한 기세로 흥분하며 앞을 다투어 돌진하면서 화살과 화전을 마구 발사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뢰같아, 적의 배를 불사르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거의 다 해버렸습니다.

수천 부사 권준이 제몸을 잊고 돌진하여 먼저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서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비롯하여 머리 10급을 베고, 우리나라 남자 1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광양 현감 어영담도 먼저 돌진하여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쏘아 맞혀서 신의 배로 묶어왔는데, 문죄하기 전에 화살을 맞은 것이 중상이고 말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즉시 목을 베었으며, 다른 왜적을 비롯하여 머리12급을 베고, 우리나라 사람 ·1명을 산채로 빼앗아 왔답니다.

사도 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장을 비롯하여 머리 16급을 베었고, 흥양 현감 배흥립이 왜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8급을 베고, 또 많이 익사시켰습니다.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은 왜대선 1척을 바다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일에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쫓아가서 깨뜨리고 일시에 불살랐습니다.

좌돌격장 급제 이기남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사로잡아 머리 7급을 베었습니다.

좌별도장이며 본영의 군관인 전만호 윤사공과 고 안책 등은 층각선 2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6급을 베었습니다.

낙안군수 신호는 왜대선 1척을 바다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7급을 베었습니다.

녹도 만호정운은 층각대선 2척을 총통으로 속까지 꿰뚫은 것을 여러 전선이 협공하여 불사르고, 머리 3급 베고,우리 나라 사람 2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여도 권관 김인영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3급을 베었습니다.

발포만호 황정록은 층각선 1척을 여러 전선과 협공하여 힘을 모아 깨뜨리고 머리 2급을 베었습니다.

우별도장 전 호 송응민은 머리 2급을 베었습니다.

흥양 통장전현감 최천보(崔天寶 : ?~1594) (갑오 4. 5) 자(字)는 경보(坰甫). 경주(慶州) 사람. 참봉 최파(崔坡)의 손자. 흥양(高興)에서 살았다. 1592년(임진)에 흥양현감으로 이순신의 부하가 되어 흥양 전선을 거느리고 한산해전에서 크게 이겼다. 이순신의 초서체『난중일기』에 의하며 1594년 4월 5일에 죽었다.
는 머리 3급을 베었습니다.

참퇴장 전첨사 이응화는 머리1급을 베었습니다.

우돌격장 급제 박이량은 머리 1급을 베었습니다.

신이 타고있는 배에서는 머리 5급을 베었습니다.

유군 1령장 손윤문은 왜소선 2척에 총을 쏘고 산위에까지 추격하였습니다.

5령장 전봉사 최도전은 우리 나라 소년 3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그 나머지 왜대선 20척. 중선 17척. 소선 5척 등은 좌.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힘을 모아 불살라 깨뜨렸으며, 화살을 맞고 물에 떨어져 익사한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인 400여명은 형세가 아주 불리하고 힘이 다되어 스스로 나머지 대선 1척. 중선7척. 소선 6척(모두 14척) 등은 접전할 때, 뒤떨어져 있다가 멀리서 배를 불태우고 목베어 죽이는 꼴을 바라보고는 노를 재촉하여 도망쳐 버렸으나, 종일접전으로 장수와 군사들이 노곤하였고 날도 황혼이 짙어 어두어둑하여 끝까지 추격할 수 없어서 위의 견내량 안바다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9일에는 가덕으로 향하려는데,<안골포에 왜선 40여쳑이 머무르고있다>고 탐망군이 보고하므로 즉시 본도우수사 및 경상우수사와 함께 적을 토멸할 계책을 상의한 바, 이날은 날이 이미 저물고 역풍이 크게 일어 나가서 싸울 수 없어서 거제땅 온천도에서 밤을 지냈습니다.

10일은 새벽에 배를 띄워<본도 우수사는 안골포 바깥 바다의 가덕 변두리에 진치고 있다가, 우리가 만일 접전하면 복병을 남겨두고 급히 달려오라>고 약속하고 신은 함대를 거느리고 「학익진」을 형성하여 먼저 진격하고, 경상우수사는 신의 뒤를 따르게 하여 안골포에 이르러 선창을 바라본 즉, 왜대선 21척. 중선15척. 소선 6척(모두 42척)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3층으로 방이 마련된 대선 1척과 2층으로된 대선2척이 포구에서 밖을 향하여 떠있었으며, 그 나머지 배들은 고기 비늘처럼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포구의 지세가 좁고 앝아서 조수가 물러나면 육지가 드러날 것이므로 판옥선과 같은 대선은 용이하게 출입할 수 없어 여러번이나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만 그들의 선운선 59척을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끌어내어 남김없이 불태우고 목베었기 때문에 형세가 궁해지면 육지로 오르려는 계획으로 험한 곳에 의거하여 배를 매어 둔 채 두렵게 여기며 겁내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서로 교대로 출입하면서 천자.지자.현자총통과 여러 가지 총통뿐 아니라 장편전 등을 빗발같이 쏘아 맞히고 있을 무렵에 본도 우수사가 장수를 정하여 복병시켜 둔 뒤 급히 달려와서 합공하니, 군세가 더욱 강해져서 방이 있는 대선과 2층 대선을 타고 있던 왜적들은 거의다 사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왜적들은 사상한 자를 낱낱이 끌어내어 소선으로 실어내고 다른 배의 왜적들을 소선에 옮겨 실어 층각대선으로 모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종일토록 하여 그 배들을 거의 다 깨뜨리자, 살아남은 왜적들은 모두 육지로 올라갔는데, 이 왜적을 다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백성들이 산골에 잠복해 있는 자가 매우 많은데, 그 배들을 모조리 불살라서 궁지에 빠진 도적들이 되게 한다면 잠복해 있는 백성들이 비참한 살육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잠깐 1리쯤 물러나아 밤을 지냈습니다.

다음날인 11일 새벽에 다시 돌아와 포위해 보았습니다만 위의 왜적들이 허둥지둥 당황하여 닻줄을 끊고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으므로 전이 싸움하던 곳을 탐색해보니, 위의 전사한 왜적들을 12곳에 모아 쌓고 불태웠는데, 거의 타다 남은 뼈다귀와 손발들이 흩어져 있고 그 포구 안팎에는 흘린피가 땅에 가득하여 곳곳이 붉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도적들의 사상자는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오전 10시쯤 양산강과 김해 포구 및 감동 포구를 모두 수색하였으나 왜적의 그림자가 전혀 없었으므로 가덕 바깥으로부터 동래. 몰운대에 이르기까지 배를 늘여 세워 진을 치게 하고 군대의 위세를 엄하게 보이게 하여<적선의 많고 적음을 탐망해서 보고하라>고 가덕도의 응봉과 함께 김해의 금단곶 연대 등지로 후망군을 모두 정하여 보내었는데, 이날 밤 8시쯤 금단곶으로 보냈던 망군인 경상우수영 수군 허수광의 보고내용에,『위의 연대에서 탐망할 예정으로 올라갔을 때, 산봉우리 아래 조그마한 암자에 한 늙은 중이 있기에 같이 연대로 올라가서 양산과 김해의 두 강의 으슥한 곳과 그 두 고을쪽을 바라보니, 적선이 늘어서 있는 수는 두곳을 합하여 거의 100여척쯤 되었습니다.

그 늙은 중에게 적선의 동정을 물었더니 대답하는 말에 근일에는 날마다 50여척이 혹은 떼를지어 11일동안 계속하여 그들 나라로부터 왔다가 어제 안골포 접전 때, 포쏘는 소리를 듣고서는 간밤에 거의 다 도망치고 다만100여척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왜적이 두려워서 도망친 꼴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날(11일)저물녘에 천성보로 나아가서 잠깐 머물면서 적에게 우리들이 오래동안 있을 계획이라는 것을 의심하도록 하고, 밤을 이용하여 군사를 돌려 12일 오전 10시쯤 한산도에 도착하니, 그곳에 올라갔던 왜적들이 연일 굶어서 걸음을 잘 걷지 못한채 피곤하여 해변에서 졸고 있었는데, 거제도의 군사와 백성들이 이미 머리 3급을 베었고, 그 나머지 100여명의 왜적은 탈출하여 도망할 길이 없는 새장속의 새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과 본도 우수사는 타도에서 온 군사로서 군량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금산의 적세가 크게 성하여 이미 전주에 도착하였다.>는 기별이 연달아 도착하므로 그 섬에 육지에 오른 적들은 <거제도의 군사와 백성들이 힘을 합쳐 목을 베고 그 급수를 통고하도록>그 도의 우수사와 약속하고 13일 본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의 여러장수들이 벤 왜적의 머리 90급은 왼쪽 귀를 베어서 소금에 저려 궤속에 넣어 올려보냅니다.

그런데, 신이 당초에 여러장수와 군사들에게 약속할 때, <공훈을 바라는 생각으로 머리 베는 것만을 서로 경쟁하다가는 도리어 해를 입어 사상하는 예가 많으니, 이미 적을 죽이기만 했으면 비록 머리를 베지 않아도 힘써 싸운자를 제 1의 공로자로 정한다.>고 두 세번 거듭 강조하였기 때문에 목을 벤 수는 많지 않으나, 공로를 세운 경상도의 여러 장수들은 작은 배를 타고 뒤에서 관망하던 자로 적선을 30여척이나 쳐서 깨뜨리자, 운집하여 머리를 베었습니다.

대체로 보아 신의 여러 장수들이 목을 벤 것과 경상우수사 원 균과 본도 우수사 이억기 등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이 목을 벤 것을 합하여 거의 250급이나 되고, 그간 바다 가운데 익사하고 혹은 머리를 베고도 물에 빠뜨려 잃어버린 것도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적의 물건 중에서는 의복이나 쌀이나 포목 등 대단치 않은 것은 군졸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마음을 위로하고 군용물품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을 뽑아내어 뒤에 기록하였습니다.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ㆍ 중부장 광양현감 어영담ㆍ전부장 방답첨사 이순신ㆍ후부장 홍양현감 배흥립ㆍ우부장 사도첨사 김완ㆍ좌척후장 녹도만호 정운ㆍ좌별도장 전 만호 윤사공ㆍ고안책ㆍ우척후장 여도군관 김 인영ㆍ좌돌격 구 선장 급제 이 기남ㆍ보인 이 언양ㆍ좌부장 낙안군수 신호ㆍ유군장 발포 만호 황정록ㆍ한후장 본영군관 전 봉사 김대복 급제 배응록 등은 접전할 때마다 몸을 잊고 먼저 돌진하여 승첩을 거두었으니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왜적의 물품은 길이 끊어져서 올려 보내지 못하여 모두 본영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접전할 때 군졸들 중에 본영 2호선의 진무 순천 수군 김봉수ㆍ방답 1호선의 별군 광양 김 두산ㆍ여도배의 격군이며 흥양 수군인 강 필인ㆍ임필근ㆍ장천봉ㆍ사도 1호선의 갑사 배중지ㆍ녹도 1호선의 흥양신선 방 응구ㆍ강진 수군 강막동ㆍ그곳 2호선의 격군인 장흥 수군 최가응손(최응손 전서)ㆍ낙안 배의 사부인 사삿집종 붓동ㆍ본영 거북선의 토병인 사삿집종 김 말손ㆍ정춘ㆍ흥양 2호선의 격군인 사삿집종 상좌ㆍ절종 귀세ㆍ절종 말연ㆍ본영 전령선의 순천 수군 박무연ㆍ발포1호선의 장흥 수군 이갓동ㆍ흥양 수군 김헌ㆍ흥양 2호선의 사삿집종 맹수 등은 철환을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신이 타고 있느 배의 격군이 토병 김국ㆍ박범ㆍ김연근ㆍ보자기 장 동ㆍ고 풍손ㆍ방답1호선의 격군인 토병 강돌매ㆍ수군 정귀연ㆍ김 수억ㆍ김 사화ㆍ토병 정덕성ㆍ손원희ㆍ그곳 2호선의 격군인 정병 채협ㆍ수군 양세복ㆍ하정ㆍ사부인 신선 김열ㆍ그곳 거북선의 군인 수군 김윤방ㆍ서우동ㆍ김인산ㆍ김가응적ㆍ이수배ㆍ송상걸ㆍ여도 배의 파진군인 김한경ㆍ토병 수군 조 이을손ㆍ선 유수ㆍ수군 이광해ㆍ임 세ㆍ윤희동ㆍ맹 언호ㆍ전은석ㆍ정대춘ㆍ방포장인 서억세ㆍ박춘문ㆍ김금이근ㆍ본영 1호선의 수군 정원방ㆍ보자기 이 보인ㆍ토병 박동동ㆍ사도 1호선의 수군 최의식ㆍ김금동ㆍ사공 박근세ㆍ최백ㆍ수군 김 홍둔ㆍ유필정ㆍ이응호ㆍ박언해ㆍ신철ㆍ강아금ㆍ군관 전광례ㆍ그곳 2호선의 격군 정가당ㆍ정우당ㆍ오범동ㆍ녹도 2호선의 군관 성길백ㆍ신선 김덕수ㆍ수군 강영남ㆍ주필상ㆍ최영안ㆍ토병 사삿집종 모노손ㆍ사부인 장흥 군사 민 시주ㆍ격군 흥양 수군 이 언정ㆍ낙안 1호선이 격군이며 보자기인 업 동ㆍ세천ㆍ이담ㆍ손망용ㆍ그 고을 2호선의 사부 김 봉수ㆍ보자기화 리동ㆍ장군 박 여산ㆍ사삿집종 난 손ㆍ보성배의 무산 오흔손ㆍ격군인 종부피ㆍ흥양 1호선의 보자기 고 읍동ㆍ남문동ㆍ진동ㆍ관청의 종지 남ㆍ그 고을 2호선의 방포장 정병 이 난춘ㆍ사군인 사삿집종 오무세ㆍ격군 사삿집종 풍파동ㆍ종대복ㆍ종금손ㆍ보인 박천매ㆍ사삿집종 팔연ㆍ종흔매ㆍ종매손ㆍ종극지ㆍ보인 박 학곤ㆍ광양 배의 도훈도 김온ㆍ무상 김담대ㆍ격군 선 동ㆍ본영 거북선의 격군 토병 김 연호ㆍ종 억지ㆍ홍윤세ㆍ정걸ㆍ장수ㆍ최몽한ㆍ수군 정회종ㆍ조 언부ㆍ박 개춘ㆍ전 거지ㆍ본영 3호선의 진무ㆍ이자춘ㆍ조덕ㆍ박선후ㆍ장매년ㆍ격군이며 보자기 이 문세ㆍ토병 김연옥ㆍ종학매ㆍ종영이ㆍ박외동ㆍ발포1호선의 토병 이노량ㆍ이구연ㆍ수군 조도본ㆍ그곳 2호선이 수군 최기ㆍ김신말ㆍ최영문ㆍ흥양 3호선의 사삿집종 풍세ㆍ보자기 망구지ㆍ망기ㆍ흔복 등은 철환에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윗사람들은 시석을 무릅쓰고 결사적으로 진격하다가 혹은 전사하고 혹은 부상하였으므로 전사자의 시체는 각기 그 장수에게 명하여 별도로 작은 배에 실리어 고향으로 보내어 장사지내게 하고, 그들의 처자들은 휼전에 의하여 시행하라 하였으며, 중상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약물을 지급하여 충분히 치료하도록 하라고 각별히 엄하게 신칙하였습니다.

녹도 만호 정운이 사로 잡아 온 거제 오양포의 보자기 최필의 문초 내용은, 『포로된지 오래되지 않아서 말이 서로 달라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 듣지를 못하였으나, 다만 <전라도의 군사가 전일 배를 불태우고 목을 베어 죽이더라>고 이따금 말하며 칼을 뽑아 위용을 뽐내는데, 그 언사와 안색을 보거나 그 소행을 살펴보면 반드시 전라도로 곧바로 향할 계획으로 거제도의 견내량에 와서 머물고 있다가 패한 것입니다.

』 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천 부사 권준이 빼앗아 온 서울 사는 보인 김 덕종의 문초 내용은,『날짜는 기억하지 못하나, 6월 경에 수를 알 수 없는 왜적들이 4개 부대로 나우어 소인의 식구들을 함께 이끌고 서울로부터 내려왔습니다.

2개부대는 부산 해변에 진을 치고 1개부대는 양산강에 진을 치고 또 1개부대는 전라도로 진격하기 위하여 출발하였으나 왜인들의 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고, 1개부대는 지금 서울서 진을 치고 피난하여 숨은 사람들을 방을 내걸고 알리면서 남김없이 들어와 살게 하여 종같이 부리고 있으며, 소인을 데리고 오던 왜장은 이번 접전때에 피살되었습니다.

』하였으며, 5령장 최도전이 사로잡아온 서울 사는 사삿집종 중남과 용이 및 경상도의 비안에 사는 사삿집종 영낙등을 문초한 내용은, 『왜적들이 내려올 때, 용인에 이르러 우리나라 군사들과 서로 만나 접전했는데, 우리나라 군사가 퇴패했으며, 곧 김해강에 이르러서는 왜장이 공문으로 여러 왜적에게 알리는데 마치 우리나라 장수들이 약속하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서쪽을 가리키면서 매번<전라도>라고 말하면서 혹은 칼을 뽑아 물건을 치는 것이 꼭 목을 베어 죽이는 형용을 하였습니다.

』 하였으며, 광양현감 어 영담이 빼앗아 온 경상도 인동현에 사는 소년 우근신을 문초한 내용은, 『소인과 누이동생은 일시에 피난하여 산으로 들어갔다가 함께 포로되어 서울로 갔는데 소인의 누이는 왜장에게 몸을 더럽혔습니다.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내려올 때 우리나라 군사와 서로 만나서 첫날은 왜적이 승리하고, 둘째날은 승리하지 못하여 퇴군하고, 셋째날은 우리 나라가 모두 퇴군하였기 때문에 바로 김해강으로 내려 왔습니다.

타고 있던 배들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하며, 다른 곳에서 끌고 와서 어디로 향한다는 말들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다만 손으로 서쪽을 가리키는 것은 필시<전라도>로 향한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왜장은 그날 접전할 때,사살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군사와 접전할 때,우리나라 사람이 항전하지 않으면 칼을 휘두르며 힘차게 날뛰고 또 우리가 승리하여 쫒으면서 활을 당겨 돌격하면 반드시 모두들 슬슬피하면 물러서는데, 비록 왜장이 엄히 독전하여도 두려워서 감히 나서지를 못하였습니다.

』 하였으며, 웅천 현감 허일이 거느린 그 고을 기관 주 귀생의 말하는 내용은, 『김해부 내에서 사는 내수사의 종 이수도 이번 7월2일 고을에 사는 그의 부모를 만나려는 일로 왔다가 하는 말에 김해부 붙암창에 와서 대어 있는 왜인들은 전라도에서 접전할 것이라고 하는데, 각 배에는 방패 이외에 느티나무 판자를 여러 장이나 덧붙여 견고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 약소하고 3개부대로 나누어 머물고 있었으며 김해성 안팎에 머물고 있던 적들이 하룻밤에는 고기잡이 불을 바라보고도 겁내어 혹은 전라도의 군사가 쳐들어 왔다하며 크게 놀라서 시끄럽게 떠들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분서주하다가 얼마 후에야 진정되었습니다.

』 하였으며 이들 여러 사람의 문초 내용이 비록 낱낱이 믿을만한 것은 못된다 하더라도 <3개부대로 나누어 배를 정비하여 전라도로 향한다>는 말만은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중, 첫째부대의 왜선 73척(14척 도주)은 거제도 견내량에 와서 머물고 있다가 이미 신 등에게 섬멸되었고 둘째 부대의 왜선 42척은 안골포 선창에 줄지어 머물고 있었으나, 역시 신등에게 패하여 무수한 사상자를 내고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다시 무리를 끌어 내어 병력을 합세하여 멀리 침범해 오면 마침내는 앞뒤로 적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 병력이 분산되고 형세가 약해질 것이 극히 염려스럽습니다.

그리하여 <군사를 다스리고 군대를 정비하여 창을 베개로 삼아 변을 기다려 다시 통고하는 즉시 수군을 거느리고 달려오라>고 본도 우수사 이억기와 약속하고 진을 파하였으며, 포로된자를 도로 빼앗아 온 사람은 각각 그 빼앗은 관원에게 명하여 <구휼하고 편히 있게 하였다가 사변이 평정된 뒤에 고향으로 돌려보내라>고 알아 듣도록 타일렀습니다.

여러 장수와 군사 및 관리들이 분연히 제몸을 돌아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껏 싸워 여러 번 승첩을 하였습니다만 조정이 멀리 떨어져 있고 길이 막혔는데, 군사들의 공훈 등급을 만약 조정의 명령을 기다린 뒤에 결정한다면 군사들의 심정을 감동케 할 수 없으므로 우선 공로를 참작하여 1ㆍ2ㆍ3등으로 별지에 기록하였습니다.

당초의 약속과 같이 비록 머리를 베지 않았다 하여도 죽을 힘으로 싸운 사람들은 신이 직접 본 바대로 등급을 나누어 결정하고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삼가 갖추어 아뢰옵니다.


 
[제 2차 당포. 당항포 등 네 곳의 승첩을 ..
[군량을 옮겨 조처하는 일을 아뢰는 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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