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제 1차 옥포 승첩을 아뢰는 계본 1592년 5월 10일 啓本 玉浦破倭兵狀]
일 자   만력 20년(1592) 5월 10일.
삼가 적을 쳐서 무찌를 일을 아룁니다.

전일 접수한 분부의 서장에 의거 하여 경상 우수사와 합력하여 적선을 쳐부수기 위하여 지난 5월 4일 축시(丑時)에 출전하면서 본도 우수사 이억기에게 <수군을 거느리고 신의 뒤를 따라 오라.>고 공문을 보낸 사연은 장계하였습니다.

그날 그 시각에 여러 장수들과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모두 85척)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경상우도의 소비포 앞바다에 이르자, 날이 저물기로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5일에는 새벽에 배를 띄워 두 도의 수군들이 지난번에 모이기로 약속한 곳인 당포로 급히 달려갔으나, 그 도의 우수사 원 균이 약속한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신이 거느린 경쾌선으로써 <당포로 빨리 나오라.>고 공문을 보냈더니 6일 진시에 원 균이 우수영 경내의 한산섬에서 단지 1척의 전선을 타고 내도 하였으므로 적선의 많고 적음과 현재 머물고 있는 곳과 어떻게 접전해야 할 것 등을 상세히 상의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의 여러 장수들인 남해 현령 기효근. 미조항 첨사 김 승용. 평산포 권관 김축 등이 판옥선1척에 같이 타고, 영등포 만호 우치적. 지세포 만호 한백록. 옥포 만호 이운용 등은 판옥선 2척에 같이 타고 5일과 6일 사이에 속속 뒤따라 왔으므로 두 도의 여러 장수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두 세 번 명확하게 약속한 뒤에 거제도 송미포 앞바다에 이르자, 날이 저물기로 밤을 지냈습니다.

7일 새벽에 일제히 배를 띄워 적선이 머물고 있다는 천성. 가덕으로 향하여 가다가 정오쯤 옥포 앞바다에 이르자,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과 여도 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일이 생겼음을 보고하므로 적선이 있음을 알고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게 태산 같이 신중한 행동을 취하라.』라고 엄하게 전령한 뒤에 옥포를 향하여 대열을 지어 일제히 들어간 즉, 왜선 30여척이 옥포 선창에 분박(分泊)하고 있는데, 큰배는 사면에 온갖 무늬를 그린 휘장을 둘러치고 그 휘장 변두리에는 대나무 장대를 꽂았으며, 붉고 흰 작은 기들은 어지러이 매달았고, 깃발의 모양은 여러 가지로서 모두 무늬있는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바람결을 따라 펄럭이어 바라보기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적도들은 그 포구에 들어가 분탕하여 연기가 온산을 가렸는데, 우리의 군선을 돌아보고는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제각기 분주히 배를 타고 아우성치며, 급하게 노를 저어 중앙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기슭으로만 배를 몰고 있었으며, 그중에서 6척은 선봉으로 달려 나오므로 신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은 한결같이 분발하여 모두 죽을 힘을 다하니 배안에 있는 관리와 군사들도 그 뜻을 본받아 서로 격려하며, 분발하여 죽기를 기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동서로 포위하면서 바람과 우뢰같이 총통과 활을 쏘기 시작하자, 적들도 총환과 활을 쏘다가 기운이 지쳐 배안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내어 던지느라고 정신이 없었으며, 화살에 맞은 자는 그 수를 알수 없고 헤엄치는 자도 얼마인지 그 수를 알수 없을 정도였는데, 적도들은 일시에 흩어져서 바위 언덕으로 기어 오르면서 서로 뒤떨어 질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었습니다.

좌부장 낙안 군수 신 호는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왜적의 머리 1급을 베었는데 배안에 있던 칼 갑옷. 의관 등은 모두 왜장의 물건인 듯 하였으며, 우부장 보성 군수 김득광은 왜대선1척을 당파하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포로되었던 1명을 산채로 빼앗았고, 전부장 흥양 현감 배 흥립은 왜대선2척을, 중부장 광양현감 어영담은 왜중선 2척과 소선 2척을,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은 왜대선 1척을, 우부기전 통장이며, 사도진 군관인 보인 이춘은 왜중선 1척을, 유균장이며 발포 가장인 신의 군관 훈련 봉사나 대용은 왜대선 2척을, 후부장 녹도 만호 정운은 왜중선 2척을, 좌척후장 여도 권관 김 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하고, 좌부 기전 통장이며 순천 대장인 전 봉사 유섭은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포로되었던 소녀 1명을 산채로 빼앗았으며, 한후장이며 신의 군관인 급제 최 대성은 왜대선 1척을, 참퇴장이며 신의 군관인 급제 배 응록은 왜대선 1척을, 돌격장이며 신의 군관인 이 언양은 왜대서 1척을, 신의 대솔 군관인 훈련 봉사 변 존서와 전봉사 김효성등은 힘을 합하여 왜대선 1척을 각각 당파하였으며, 경상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왜선 5척을 당파하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포로 되었던 1명(3명-全書)을 산채로 빼앗았는데, 합해서 왜선 26척을 모두 총통으로 쏘아 맞혀 깨뜨리고 불사르니 넓은 바다에는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덮었으며, 산으로 올라간 적도들은 숲속으로 숨어 엎드려 겁내지 않는 놈이 없었습니다.

신은 여러 전선에서 용감한 사부를 뽑아 산에 오늘 적을 추포하려고 하였으나, 거제도는 산형이 험준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사람들이 발붙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장 적의 소굴에 들어 있는데 병선에 사부(射夫)가 없으면 혹 뒤로 포위될 염려도 있고, 날도 저물어 가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등포 앞 바다로 물러나와 군졸들에게 나무하는 일과 물 긷는 일을 명령하고 밤을 지낼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申時쯤 <멀지 않는 바다에 또 왜대선 5척이 지나간다>고 척후장이 보고하므로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이를 쫓아서 웅천땅 합포 앞바다에 이르자, 왜적들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도 첨사 김 완이 왜대서 1척을, 방답첨사 이 순신(李純信)이 왜대선 1척을, 광양 현감 어 영담이 왜대선 1척을, 그부 소속으로 방답진에서 귀양살이 하던 전 첨사 이 응화가 왜 소선 1척을, 신의 군관인 봉사 변 존서.송 희립. 김 효성.이 설 등이 힘을 합하여 활을 쏘아 왜대선 1척을 모두 남김없이 깨뜨려서 불사르고, 밤중에 노를 재촉하여 창원땅 남포앞바다에 이르러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8일 이른 아침에 다시 < 진해땅 고리량에 왜선이 머물고 있다>는 기별을 듣고 곧 출전을 명하여 내외의 섬들을 협공 수색하면서 저도를 지나 고성땅 적진포에 이르자, 왜의 대선과 중선을 합하여 13척이 바다 어귀에 열박하고 있었습니다.

왜적들은 포구 안 여염집을 분탕한 뒤에 우리 군사들의 위세를 바라 보고서는 겁내어 산으로 올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낙안 군수 신 호는 그 부의 소속인 순천 대장 유 섭과 힘을 합하여 왜대선 1척을, 같은 부의 통장으로 고을에 사는 급제 박 영남과 보인 김 봉수등이 힘을 합하여 왜대선 1척을, 보성군수 김 득광이 왜대선 1척을, 방답첨사 이 순신(李純信)이 왜대선 1척을, 사도 첨사 김 완이 왜대선 1척을, 녹도 만호 정 운이 왜대선 1척을, 그 부의 통장으로 귀양살이 하던 전 봉사 주 몽용이 왜중선 1척을, 신의 대솔 군관인 전 봉사 이설과 송 희립 등이 힘을 합하여 왜대선 2척을, 군관 정로위 이 봉수가 왜대선 1척을, 군관 별시위 송한연이 왜중선 1척 등을 모두 총통으로 쏘아 깨뜨리고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아침밥을 먹고 쉬려고 하는데, 위의 적진포 근처에 사는 向化人 이 신동이란 자가 신들의 수군을 바라보고 산꼭대기에서 아기를 업고 울부짖으면서 내려오므로 작은 배로 실어와서 신이 직접 적도들의 소행을 물어보니, 『그 왜적들이 어제 이 포구로 와서 어염집에서 빼앗는 재물을 우마로 싣고 가서 그들의 배에 나누워 싣고서는 초저녁에 배를 바다 가운데 띄워 놓고 소를 잡아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피리를 불며 날이 새도록 그치지 않았는데, 숨어서 그 곡조를 들어보니 모두 우리 나라의 곡조 이었고, 오늘 이른 아침에 반수는 배를 지키고 반수 가량은 육지로 내려와서 고향을 향하였습니다.

저의 노모와 처자는 적을 보자,서로 헤어져 간곳을 알지 못합니다.

』 하면서 아주 민망하도록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호소 하므로 신은 그 정상이 가련하고 적의 포로가 될 것이 염려스러워 데리고 가겠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노모와 처자를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따르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장수와 군사들이 이 말을 듣고는 더욱더 분하게 여겨 서로 돌아보면서 기운을 돋구어 한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곧 천성. 가덕. 부산 등지로 향하여 적선을 섬멸할 계획을 세워보았습니다만, 위의 적선이 머물고 있는 곳들은 지세가 좁고 얕아서 판옥선과 같은 대선으로는 싸우기가 매우 어려울 뿐아니라, 본도 우수사 이 억기가 미쳐 달려오지 아서 홀로 적중으로 진격하기에는 세력이 너무나 외롭고 위태로와 원 균과 함께 계획을 논의하고 별도로 기묘한 계획을 마련하여 나라의 치욕을 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도의 도사 최 철견의 첩보가 뜻 밖에 도착하여 비로서 상감께서 관서로 피난가셨다는 기별을 듣게 되어 놀랍고 통분함이 망극하여 오내(五內)가 찢어지는 듯 하고 울음소리와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종일 토록 서로 붙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각자 배를 돌리기로 하고 초 9일 오시(午時)에 모든 전선을 거느리고 무사히 본영으로 돌아와서 여러 장수들에게, 『배들을 더 한층 정비하여 바다 어귀에서 사변(事變)에 대비하라.』 고 알아 듣도록 타이르고 진을 파하였습니다.

순천 대장 유 섭이 빼앗아 온 우리나라 소녀는 나이 겨우 4,5세로써 그의 근각을 알길이 없으며, 보성군수 김 득광이 빼앗아 온 소녀 1명은 나이는 좀 들었으나, 머리를 깎아 왜인같았는데 여러 상황을 심문해 본즉, 임진년 5월 7일 동래 동면 응암리에 사는 백성 윤 백연으로서 나이는 14세이며 제가 아무날 아무곳에서 왜인을 만나 누구누구와 같이 포로되었다가 그날 접전할때, 도로 붙잡혀 나오게 된 연유와 왜적들의 모든 소행을 비롯하여 생년월일과 신분등을 아울러 진술하였는데, 심문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다대포 수군 곤절로서 왜란이 일어나자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고, 어머니는 양가집 딸로서 이름은 모론이나 지금은 죽었으며, 내외 조부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소인은 기장현의 신선 김 진명이 하인으로 데리고 있었는데,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지난 4월 왜적들이 부산포에 도박하자, 호수(戶首) 진명은 군령에 의하여 소인에게 군장비를 지우고 부산진으로 데리고 가는데, 마비을현에 이르러서 왜적이 벌써 부산을 함락하였음을 듣고, 되돌아서 소인을 데리고 바로 기장현으로 달려가 성안에서 진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군졸들이 도망하므로 진명이 자기네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지낸 뒤에 소인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이곳으로 피난해 온 것을 우연히 길가에서 만나 그 을 운봉산속에 숨어서 8,9일 동안을 지냈는데 왜적들이 무수히 침입하여 소인과 오빠 복룡 등은 먼저 포로되었습니다.

해가 질무렵에 부산성으로 끌려가서 밤을 지낸 뒤에 오빠 복룡은 간곳을 알 수 없었고, 소인은 배 밑창에 넣어 두고서는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나, 하루는 적선 30여척이 김해로 향하여 떠나고, 반정도는 상륙하여 그 곳에 머무르면서 5,6일동안 도적질을 한 후에 이달 초 6일 사시에 일제히 배를 띠워 율포에 와서 밤을 지내고 7일 새벽에 그곳으로부터 옥포 앞바다에 이르러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날 접전할 때에는 왜적의 배안에 우리나라의 철환과 장편전이 비오듯 쏟아져 맞는 놈이 곧 넘어져서 피르 뚜 뚝 흘리자, 왜적들은 아우성치며 엎어져 넘어지는 등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모두 물에 뛰어들어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소인은 다행이 말이 통하여 산채로 잡혔습니다만 어리석은 사람으로써 배 밑창에 오래있었기 때문에 다른 일들은 알지 못합니다.

』 라고 진술하였습니다.

위에 말씀한 윤 백연과 소녀 등은 순천.보성 등 관원에게<각별히 보호하라.>하고 돌려주었습니다.

흉악하고 추악한 적들의 해독이 이 지경에 이르러 벌써 많이 살육되고 또 많이 약탈당하여 모든 백성들 중에 부모나 자식을 잃지 않는 사람이 없을 지경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이 이번에 연해안을 두루 돌아보니 지나가는 산골짜기마다 피난민 없는 곳이 없으며, 신들의 배를 바라 보고는 아이나 늙은이나 짐을 지고 서로 이끌며 흐느껴 울며 부르짖는 것이 다시 살아날 길을 얻은 것처럼 좋아하고, 혹은 적의 종적을 알려주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기에 참담하여 곧 싣고 가고 싶었으나 너무나 많을 뿐 아니라 전쟁을 해야하는 배에 사람들을 가득 실으면 배를 운용하는데 편리하지 못함을 생각하여, 『돌아올때 데리고 갈 예정이니 각각 잘 숨어서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여 사로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 라고 알아듣도록 타이른 뒤에 적을 쫒아 멀리 떠났다가, 별안간 서쪽으로 몽진하신 기별을 듣고 어찌할 바를 알지못하여 노를 재촉하여 그대로 돌아왔으나, 애련한 정은 오히려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를 피난민이 집을 나온지 날이 오래되어 남은 양곡마저 다되어 굶어 죽을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도의 겸관찰사에게, 『끝까지 탐방해서 찾아 모아 들여 구호하기 바랍니다.

』 라고 통보하였습니다.

대체로 보아 신이 거느린 여러 장수와 관리들은 모두 분격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적진에 돌진하면서 함께 대첩을 기약하였었는데, 무릇 지금까지의 해전에서 40여척을 불살라 없애었으나, 왜의 머리를 벤 것이 다만 둘 뿐이므로 신이 섬멸하고 싶은 대로 다 못하여 더 한층 통분하오나, 접전할 때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적선은 빠르기가 나는 듯하며, 우리배를 보고 미쳐 도망치지 못하게 되면 으레히 기슭을 따라 고기두름 엮은 듯이 행선하다가 형세가 불리하면 육상으로 도망하였기 까닭에 이번길에 섬멸하지 못하여 간담이 찢어질 것 같아 칼을 어루만지면서 혀를 차고 탄식하였습니다.

왜선에 실렸던 왜의 물건은 모두 찾아내어 다섯간 창고에 가득히 채우고도 남았으며, 그 밖의 사소한 잡물은 다 기록하지를 못하고, 그중에서 전쟁에 사용할 만한 물건은 골라서 별도로 그 종류를 모아 놓았는데 김해부의 인이관안(人吏官案)과 분군성책(分軍成冊) 및 각종 활. 화살 등은 아울러서 차례로 조목조목 기록하였습니다.

왜선에 실려 있었던 물건 중에 우리 나라의 쌀 300여 석은 여러 전선의 굶주린 격군과 사부들의 양식으로 적당히 나누어 주고, 의복과 목면 등의 물건도 군사들에 나누어 주어서 적을 무찌른 뒤에는 이익이 따른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고 하는바, 아직은 그대로 두고 조정의 조치를 기다립니다.

왜적들은 붉고 검은 철갑을 입고 여러 가지 철투구를 쓰고 있었으며, 입언저리에는 「말갈기」가 종횡으로 뻗쳐있어서 마치 「탈바가지」같았으며, 금관과 금빛나는 깃과 꽃이 새의 깃으로 엮어 만든 옷.우췌(날짐승의 깃으로 만든비). 나각(소라)같은 것들은 기이한 모양으로 매우 사치하고 호사하며, 귀신같기도 하고 짐승같기도 하여 보는사람은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엇으며, 성을 깨뜨리는 여러 기구의 대철정.사줄 같은 물건도 역시 매우 괴상하였으므로 군용 물품중에 가장 긴요한 것 한가지 씩은 뽑아서 봉하여 올립니다.

그 중에 철갑.총통등의 물품과 낙안 군수 신호가 베인 머리 1급은 왼쪽 귀를 도려서 궤안에 넣고 봉함하여 처음 접전할 때 공로를 세운 신의 군관 송한연과 지무 김대수 등에게 주어서 올려보냅니다.

그밖에 보내는 물건도 원 수량대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접전할때, 순천 대장선의 사부이며 순천에 사는 정병 이 선지가 왼쪽 팔 한 곳에 화살을 맞아 조금 상한 것 이외에는 전상자가 없습니다.

오직 우수사 원 균은 단 3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신의 여러장수들이 사로잡은 왜선을 활을 쏘면서 빼앗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사부와 격군2명이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주장으로써 부하들의 단속을 잘못 한 일이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상도 소속인 거제 현령 김 준민은 멀지 않는 바다이며 그가 관할하는 지역 안에서 연일 고전하였는데도 주장인 원 균이 빨리 오라는 격문을 보내었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해악한 일이오니 조정에서 조처하시옵소서.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적을 막는 방책에 있어서 수군이 작전을 하지 않고 오직 육전에서 성을 지키는 방비에만 전력하였기 때문에 나라의 수 백년 기업이 하루 아침에 적의 소굴로 변해진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메 목이 메여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적이 만약 뱃길로 본도를 침범해 온다면 신이 해전으로서 결사적으로 담당하겠으나, 육지로 침범해 오면 본도의 군사들은 전마가 한필도 없어서 대응할 도리가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순천 돌산도 백야곶과 흥양 도양장에서 기르는 말 중에 전쟁에 쓸만한 말들이 많이 있으므로 넉넉하게 몰아내어 장수와 군사들에 나누어 주어서 살찌게 먹이고, 달리기를 훈련시켜서 전쟁에 사용한다면 승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의 독단으로 말씀드릴 일이 아니오나, 사태가 급급하여 겸 관찰사 이 광에게 감독관을 정해 보내게 하고, 말을 몰아내는 군사는 각 진포에서 뽑혀 온 군사를 동원하여 1,2일 기한으로 잡아내어 훈련시키도록 공문을 내었습니다.

삼가 아뢰옵니다.


 
[구원하러 출전하는 일을 아뢰는 계본(3)]
[제 2차 당포. 당항포 등 네 곳의 승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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